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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특히 현장 과학자, field scientist)들의 속살을 엿본 느낌이랄까
마이클 R. 캔필드의 아이디어로 나온 『과학자의 관찰 노트』를 읽는 느낌은 그런 것이었다.
결국에는 자신들의 연구를 위해 작성하는 것이고, 상당 부분 나중에 연구 논문이나 책의 기본 자료가 되는 것이긴 하지만, 날 것 그대로의 관찰 노트를 공개한다는 것은 어쩌면 연예인이 자신의 민낯을 내보이는 것과 비슷한 느낌일 것 같다.
에릭 그린이 “나만의 관찰 노트를 만들자”라는 글에서도 쓰고 있듯이 생물학자(그가 지적하고 있는 것은 미생물학자, 분자생물학자, 생화학자 등)들은 정말 꼼꼼히 연구 노트를 작성하는 걸 교육받는다.
우리나라에서도 연구과제를 종료할 때 실험 노트 사본(심지어 원본을 요구하는 기관도 있다) 제출을 (적어도 형식적으로는) 의무화하는 경우도 많고, 특허와 관련해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더더욱 연구 노트 작성이 중요하다. 사실 그 이유에서만 아니라, 연구를 하는 것은 그런 기록에서 나와야 한다는 것이 연구 노트를 작성하는 더 중요한 이유이긴 하다.
물론 나 역시 직접 실험을 할 때는 실험 노트를 꼼꼼이 작성한 편이고, 그 실험 노트들이 내 책장 한 켠에 수십 권이 세워져 있기도 하다.
그런데, 이 책에서 말하는 것은 그런 실험실 내에서의 실험 노트가 아니라 바로 현장에서 작성되는 ‘관찰 노트’(field notes)이다.
둘은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모두 연구를 위해서, 연구의 한 과정으로서 이루어지는 것이고, 세부적인 것까지 작성해야 하는 것은 비슷하지만, 하나는 인위적인 조건에 대한 여러 변수들을 기입하고 그 결과를 쓰는 것이지만, 다른 하나는 자연적인 조건과 그에 대한 관찰을 쓰는 것이다. 당연히 실험 노트 한 구석에는 실험하는 이의 감정이 드러나기도 하지만, 야외에서 작성되는 관찰 노트에는 그런 감정이 더 많이 드러날 것이다.
사실은 나도 박사 과정 중에는 그런 관찰 노트를 작성해야 하는 일을 했었다고 볼 수 있다. 버섯의 분류가 박사 학위 주제였고, 실험실에서는 정기적으로 야외로 채집을 나갔으니 말이다. 물론 나의 주제를 좀더 세분화하자면 분자 분류(molecular systematics)였고, 그렇게 야외 채집이 내 성격에 맞는 일은 아니라 가끔만 나가긴 했지만 말이다.
그런데, 지도교수님과 함께 나가면 늘 볼 수 있는 일이 바로 교수님이 작성하는 메모였다. 조금이라도 쉬는 순간에는 늘 주머니에서 수첩을 꺼내서 무언가를 꼼꼼히 쓰셨다. 그건 외국에 학회에 함께 갔을 때도 그랬다. 강연을 듣는 와중에도 무언가를 쓰시곤 했는데, 곁눈질로 훔쳐봤더니, 강연에 관한 내용이 아니라 바로 오전에 있었던 일, 어디를 방문했던 일 등등을 정리하는 것이었던 기억이 난다. 오히려 강연에 집중하지 않으시는 것 같아 조금은 의아하게 생각했었고.
그처럼 ‘노트’ 작성에 열의를 보이셨던 교수님이셨지만, 제자들에게는 강요를 하지 않으셨는데 아마도 그건 성격 탓이었을 것이라 짐작해본다. 만약 그것을 요구하셨다면 나도 작성을 했을 것이고, 비록 지금은 그 일을 하지 않더라도 가끔은 그 때의 노트를 꺼내어 회상에 잠길지도 모를 일이다.
당연히 실험실 내에서 작성한 감정 없는 실험 노트보다 훨씬 정감 어린 기록이 되었을 것이다.
이 책의 각 장(chapter)들을 쓴 야외 과학자들의 관찰 노트는 제각기 개성이 있다. 어떤 이는 그림을 위주로. 어떤 이는 당시의 자신의 느낌이 많이 들어간 관찰 노트를. 또 어떤 이는 딱 규격화된 형식으로 관찰 노트를 작성한다. 또 어떤 과학자는 직접 연필과 펜으로 작성하는 관찰의 우위성을 적극 주장하지만, 또 어떤 과학자는 컴퓨터에다 작성하는 편리함과 영구성에 대해 옹호하기도 한다. 그게 모두 자신들의 경험에서 나온, 자신에게 가장 적합하다고 하는 것은 모두에게 공통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관찰 노트를 어떻게 작성해야 한다는 법칙 같은 것은 없는 셈이다. 심지어 관찰 노트의 표본을 만들어 보급했던 그리널 같은 이의 관찰 노트도 자신의 지침에 맞지 않게 관찰 노트를 작성했었다는 것을 보면 더욱 그렇다.
이처럼 자연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과학자들의 속살을 보면서 다시 느낀 것은 그런 것이다. 누구나 보고 생각할 수는 있지만, 그것을 자기 것으로 만들고, 그것을 통해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들고, 또 새로운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은 기록을 통해서라는 것 말이다. 그건 이런 야외 과학자들의 경우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실험실에서 실험을 하는 과학자들에게도 해당되고, 과학자가 아닌 작가들에게도 해당되고, 회사원에게도 해당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만의 노트를 만들자’는 것은 어떤 특수한 업무를 하는 이들에게만 주는 조언이 아니라, 모든 창조적인 일을 하려는 이들에게 해당되는 조언일 수 있다.
(2013. 12)
찰스 다윈의 비글호 항해기 는 진화론과 종의 기원 을 이끌어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1839년 출간된 이 책은 세상에 나온 지 100년을 훌쩍 넘긴 지금까지도 사람들에게 널리 읽히고 있다. 비글호 항해기 는 어떻게 탄생했을까? 그것은 다름 아닌 5년여의 탐사 기간 동안 기록한 18권의 ‘관찰 노트’에서였다.
책은 동물행동학, 생태학, 고생물학, 곤충학, 인류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과학자들의 노트를 그대로 담고 있다. 에드워드 O. 윌슨을 비롯한 15명의 저명한 과학자들은 대중에게 자신의 노트를 기꺼이 공개했다. 또한 단순히 관찰 노트를 잘 쓰는 방법을 제시하는 설명서가 아닌. 쉽게 접할 수 없는 과학자들의 삶과 그들이 자연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다양한 방식을 보여 준다. 들고 다니기 편한 수첩부터 아주 사적인 감상이 담겨 있는 일기와 체계적으로 정리된 탐사 전용 노트까지 자연 현장이 담긴 과학자의 생생한 관찰 기록을 들여다볼 수 있다.
옮긴이의 말
프롤로그 또 다른 비글호 항해기 를 기대하며
- 마이클 R. 캔필드(곤충학자)
1장 사자와 판다, 고릴라의 사생활
동물학자의 관찰하는 즐거움
- 조지 셀러(동물학자)
2장 둑길을 달리며 관찰하기
동물행동학자가 기록하는 일상
- 베른트 하인리히(동물행동학자)
3장 아마추어 조류 관찰자가 할 수 있는 일
조류학자의 목록 작성법
- 켄 카우프만(조류학자)
4장 벨라롱 국립 공원에서 일어난 사건
생태학자의 탐사 일지
- 로저 키칭(생태학자)
5장 현장 기록, 후배 과학자를 위한 타임캡슐
고생물학자가 노트를 정리하는 방법
- 애나 케이 베렌스마이어(고생물학자)
6장 드러난 것과 감춰진 것
인류학자의 세 가지 노트
- 캐런 크레이머(인류학자)
7장 손으로 직접 그려야만 보이는 것들
동물학자의 드로잉
- 조너선 킹던(동물학자)
8장 왜 스케치를 해야 할까?
과학 일러스트레이터의 그림 도구
- 제니 켈러(일러스트레이터)
9장 식물의 이름표에는 무엇을 적어야 할까?
식물 관찰 노트의 진화와 운명
- 제임스 리빌(식물학자)
10장 관찰 기록과 사진, 녹음 파일을 컴퓨터에 저장하다
곤충학자의 데이터베이스
- 피오트르 나스크레츠키(곤충학자)
11장 100년 전의 노트를 꺼내다
생태 조사단의 현장 조사
- 존 페린(보존생물학자), 제임스 패튼(동물학자)
12장 나만의 필드 노트를 만들자
관찰 노트를 써야 하는 이유
- 에릭 그린(동물생태학자)
에필로그 끝없이 쓸 수 있는 노트를 상상하며
- 에드워드 O. 윌슨(진화생물학자)
감사의 말
사진 출처
주(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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